墨의 초상 정원, 안미자 전


  생활 속 공간이 곧 작업실인 안미자는 매일 자신의 삶을 먹으로 마주한다. 먹은 그녀에게 초상이자 자연의 시간을 농축시킨 정원이기도 하다. 먹의 초상으로서 그녀의 작품은 하루라는 정해진 시간의 간격을 두고 쌓고 쌓은 반복적 행위의 결과물이다. 이렇게 완성된 작품은 전시 공간으로 옮겨 와 먹의 초상으로 가득 찬 정원을 보여준다. 바로 이번 전시는 먹의 시간을 축적한 시공의 정원이라고 생각하고 기획되었다. 전시 공간에 들어서면 자연의 미세한 바람이 일렁임 속에서 어두운 밤하늘을 보며 산책하는 먹의 정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특별한 이 정원에서 내가 마주할 수 있는 작품은 쉽게 눈에 들어오기 힘들기 때문에 천천히 지긋이 눈을 감았다가 다시 눈의 조리개를 좁혀가면서 신체적 감각을 개방시켜야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안미자의 작품에서 먹은 하루의 삶을 시작해 마무리하는 초상과도 같다. 그녀에게 이러한 먹의 초상은 시간을 함축했다가 다시 자연으로 환원시키는 힘을 지녔다. 이 힘은 자연스럽게 마치 정원에서 긴 호흡으로 명상할 수 있는 체험으로 이끌기도 한다. 또한 작품에서 드러난 그녀의 먹은 매우 투명한 존재인 동시에 가장 정화된 시간을 내포하고 있다. 이는 작가의 내면에 흐르는 강물처럼 한 곳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는 연결점을 만들고 마치 재생을 위해 방생하는 것과도 같은 행위로도 생각된다.

작가에게 있어서 먹물의 투명함은 캔버스 천으로 침투해 얻어 낸 먹의 미세한 분자가 이뤄낸 것이며 아울러 시간에 따라 깊숙한 고요함 속으로 스며드는 맑고 순수한 결정체라고도 할 수 있다. 먹의 미세한 분자가 응집되었을 때 오히려 먹의 칠흑 같은 어둠은 가장 투명한 세계를 낳는다. 이는 바로 검은 세계를 검은 속에서 밝고 비추고 따뜻한 신체적 감성과 접촉했을 때 경험할 수 있는 세계이다. 그녀의 작품에서 먹은 고요한 적막의 세계를 감지하는 신체이자 물질이라는 고유성을 다시 환기 시킨다. 이번 전시는 화면에서 검다는 형용사 이상의 색 본연의 의식이 잠재되어있는 시공간 그 자체이다. 여기서 검은 세계가 깊으면 깊을수록 더 깨어 있는 의식의 촉각이 살아 체험으로 이끌 것이다. 즉 심연의 먹의 정원에서 보는 이와 작품 사이의 교감이 형성될 수 있다. 이는 관람자의 시선을 머물게 하는 것이 아닌 볼 수 없는 세계를 볼 수 있게 하는 신체적 열림이 작용할 것이다. 이와 동시에 정신적인 의식을 깨울 수 있게 하는 에너지는 바로 여기 정원에 잠재되어 있다. 여기서 우리는 의식하되 의식하지 못하는 이 세계를 고요하고 적막한 태초의 세계로 인식할 수 있고, 바로 이때 신체적인 반응은 더욱 무명의 혼돈 속에서 돈오(頓悟)의 세계를 경험할지 모른다. 이러한 세계는 이미 작가의 제작 과정에서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고 생각된다.

처음 작가 안미자의 작품은 문자에서 출발한 형상성을 지니고 있었다. 이는 기호가 아닌 모티프로서 실험된 것이라고 할 수 있고, 또한 이를 통해 문자 상형의 거듭된 추상화 과정을 이뤄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조형은 추상 자체의 조형언어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운필(運筆)과 선염(渲染)과 같은 기법과 상통한 창작 태도라고 생각된다. 심지어 지묵(漬墨)과 같은 전통 수묵과 소통할 수 있는 또 다른 기법으로 실험되었고, 그 과정 속에서 먹을 원소의 단위로 돌려놓음으로써 순연의 먹 자체를 오브제로 다루게 된 것이었다. 그런 후 화면에서 구축된 검은 먹은 흑색의 묵즙墨汁의 빨아들이고 내뱉는 흡착과 토사吐瀉의 시간으로 점철된다. 뿐만아니라, 화면의 표층은 캔버스 면포를 뚫고 들어간 먹즙의 시간성이 서로 다른 시간에 흡입한 불균형한 색감으로 서로 다른 심오한 빛을 삼켜버린 공간을 형성한다. 바로 이러한 그녀의 창작 태도가 자신의 삶과 일치하는 먹을 초상으로 드러낸 동시에 초상의 먹으로 정원을 만든 것이다.

본 기획전에서 만날 수 있는 그녀의 <성성적적(惺惺寂寂)> 시리즈 작품은 바로 작가 자신의 삶의 방식이자 창작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어찌 보면 고요함 속에 깨어 있기를 바라는 의식조차 먹의 언어로 체득하는 세계를 보여준다. 결국, 이 정원에 들어와 극한의 감각을 하나로 집중해 명상의 세계를 경험한다면 작가가 열어 놓은 창작이념의 통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정희(한국미술연구소) 20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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