墨積裏面, 빛의 無常공간


긋다, 열다

작가는 평평한 넓은 붓 한 자루를 든다. 한 가닥 한 가닥 넘칠 만큼 시간을 태운 검은 물을 충분히 먹이고 숨을 고른다. 천천히 그러나 한 숨에,

빛을 뚫은 墨面의 初道를 따라 新生의 공간이 열린다. 나아간다. 또 힘을 내 나아간다. 갈수록 깊어진다. 현상계의 형상은 흐려지고 색은 어둡다. 그 빛은 현묘하다.

자형을 쓴 것이 아니다. 긋기를 반복한다. 書의 법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리고자 하는 실체가 없이 뜻만 빌었다. 문자의 형을 취하지 않는다. 그래서 無象畵이다.


惺惺寂寂

처음엔 형상을 추리는 추상이었다.

색이 형과 상을 구분하여 바탕에서 깊이 들어가기를 시도하지 않았다. 밝고 여리다.

지금은 까마득히 멀고 깊고 무겁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無常이다.

그림마다 다른 墨道를 따라 들어가지만 그 길의 끝은 고요하다.


墨積裏面

아는 만큼 모르고 시간만큼 보인다.


(횡빛나, 미술사가 한국예술종합학교 겸임교수) 20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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