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원초로 돌아가다


  칠흙 같은 어둠에서, 혹은 옅은 빛 가운데 검디검은 ‘형태’가 떠오른다. 윤곽도 흐릿한 그것은, 실은 한자의 점화이다. 그렇게 인식할 수 있더라도 ‘형태’를 특정의 한자에 비정하기 어렵고, 깊이 있는 먹빛에 매료될 뿐이다.
안미자는 한국 출신. 2001년 일본으로 와서 작년 동경의 여자미술대학대학원을 수료했다. 수년전부터 한자를 모티브로 한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그 작품=사진=이른바 서(書)와는 동떨어져 있다. 문자는 시간에 전도되고, 점화는 분리된다. 보다 상형문자에 가까운 전서체와도 통한다. 한자의 표의성을 의식적으로 해체해 조형적인 가능성을 추구하고 있다고 할까.
매체는 묵즙과 생 면포. 빨지 않은 면포에 반복하여 붓으로 묵즙을 침잠시켜 나간다. 오로지 작업을 향해 먹의 그라데이션 속에서 혼돈된 ‘형태’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 화면은 이러한 연상을 자아낸다. 태초에 겨우 말을 획득한 인간은 넓고 아득한 일부를 "티엔"이라고 이름 붙였다. 말은 문자를 얻어 사물을 지칭하는데 머무르지 않고, 이윽고 고도로 추상적인 관념을 지시하기까지 발전했다. ‘天’이 동아시아 사상의 핵심을 이루는 개념이 되었듯.
안미자의 작업은 확실히 그러한 언어를 아득한 원초로까지 거슬러 올라가, 말에 의해 생성된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시도로 비친다. (번역 황빛나)

니시오카 카즈마사
「安美子 展」 『아사히신문』 아트 201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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